아주 오래 (잘) 될 친구들의 단상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전시와 공연 미리보기!! 드디어 오늘부터 나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분들께 전시 될 사진 중 3장과 작업 중인 음악의 일부를 보내 드리고 자유로운 코멘트를 받아서 오늘부터 시리즈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공연 미리보기의 이름은..’아주 오래 (잘) 될 친구들의 단상’이에요 ㅎㅎ..
친구들이 작업을 오래 오래 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우리랑 오래 오래 놀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이렇게 지었습니다. ㅎㅎ 어떤가요?

암튼, ‘아주 오래 (잘) 될 친구들의 단상’ 첫번째는 친애하는 화가 이수지님의 글입니다.
보내주신 글의 말미에,
‘we are all strangers, you are alone 이란 문구, 타인의 고독을 목격한다는 행위 그리고 제가 평소 낯선 느낌으로 가지고 있던 자유로운(?) 개들과의 마주침을 염두에 두고 적었어요.’ 라고 부연 설명해 주셨어요.
사진 전시와 공연의 단상에서 시작된 영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퍼져나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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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이수지 (화가)

<ㄱ의 고독>
1.
반 년이 넘도록 낯선 지역들을 떠도는 일을 했다.
의문이었다. 일은 미처 손에 익지 않았고 마주하는 관계들이 두려운 때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에 말을 걸 듯 혼잣말을 하게 되는지
줄에 묶인 개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면 멈춰 서게 되는지
손빨래를 하고 나서 물렁해진 굳은살을 하염없이 뜯고 있는지
밟고 또 밟은 길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슈퍼를 매일같이 찾아가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고 있는지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사귀를 몇 시간이고 쳐다보게 되는지
편지를 쓰고 싶은지
비가 와 일을 쉬는 날이면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지
곁에 없는 당신들을 생각하며, 왜.
2.
떠돌아다니다 보면 낯선 장소에서 홀로 다니는 개들을 종종 마주친다.
논두렁 한가운데에서 며칠째 마주친 이 개는 어디서 왔을까? 어째서 깻잎 밭 한가운데 그렇게 앉아있을까
사람과 함께 했던 적은 있을까 어울리는 다른 개들은 있을까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실까 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어느 그늘에 가서 앉아있을까 너는 외로울까 경계할까 살아있음에 충분할까. 어째서 그렇게 현재를 품고 있나 인간의 고독을 네게 대입해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 너의 자유가 왜 내게 어색한가 자유가 없다면 고독은 존재할 수 있는가 자유가 없던 때 고독했던 기억이 있을까 쉽사리 다른 것들에게 대치되고 말았던가 자유로울 때 나를 불안하게 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무엇도 기억함 없이 현재만을 산다 해도 고독은 남을까 아무리 흔들어 마셔도 나오지 않는 캔 속의 마지막 한 방울처럼 늘 거기 있을까
풀 한 포기는 고독해 보이는가 딸기 한 알이 고독해 보이는가.
기억 속 당신들처럼 그 개는 내가 한 걸음 다가서면 세 걸음 뒷걸음쳤다.
3.
유리컵에 따라놓은 차가운 보리차가 입술과, 손과, 세상의 온도로 미지근해진다..
여기 흔하지만 찾기 힘들며, 공유하면 변질되는 시간이 있다.
손끝을 대는 순간 시들어 떨어지는 꽃 같은 고독의 표면을 붙든다는 것은 사진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고독을 느낄 수 있을까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회오리 치는 내면이 있을까
고독은 타인과 맞닿는 길일까 아니면 홀로 미치는 정신을 향한 급행열차일까 어쩌면 그저 본성에 지나지 않는가

내가 마주친 그 또는 그녀의, 혹은 개들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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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2.오세범 (디자이너.딴짓의 세상)

# <데미안 Demien> 헤르만 헤세 (전영애 역, 민음사)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때때로 기괴한 형태를 가진 자연물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마력, 그 얽히고 설킨 깊은 언어에 온통 몰두하여 관찰했다. 고목처럼 드러난 길다란 나무 뿌리, 암석 속의 색색깔 광맥, 물 위에 뜬 기름 얼룩, 유리에 난 금 – 그런 것들이 종종 나에게 커다란 마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물과 불, 연기, 구름, 먼지, 그리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아주 특별하게 선회하는 색 얼룩이.
…(생략)…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비이성적이고, 얽히고 설킨, 기이한 자연의 형태들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들 내면에서, 이 영상을 이루어지게 한 우리 내면의 의지와의 일치감을 낳는다 – 우리는 곧 그 일치감을 우리들 자신의 기분으로, 우리들 자신의 창조로 여기려는 유혹을 느낀다 – 우리는 우리와 자연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고, 흐려지는 것을 보고, 분위기를 알게 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망막 위의 이 영상들이 바깥의 인상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내면의 인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140-141p)

# 지난봄에 산 자전거로 기숙사와 랩을 오가고 있다. 천천히 걸을 때 눈에 들어왔던 풍경이 빠른 페달에 흘러가면, 늘 걸어왔던 길이 다른 인상으로 느껴진다. 지면 가까이에 있던 시선이 하늘 높이 올라가 구글맵의 관점에 이른다. 길은 풍경이 아니라 경로가 된다. 가늘고 구불거리고 짧은 선으로의 이동.
덤불 위에 쌓인 눈을 찍은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저 높이 항공에서 부감으로 찍은 산의 넓은 면적 같기도 한 – 사진을 보고 음악을 들었다. 아주 미세한 것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억겁의 거리에 펼쳐진 것 같다. 얼마나 빠르게 가로지르는지 혹은 시선을 얼마나 높은 곳에 둘 것인지에 따라 거리와 풍경의 감각이 달라질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빠르게 오늘을 가로지르는지 혹은 얼마나 나를 멀리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외로움과 고독의 감각도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한들 본질이야 달라질 리 없겠지만, 마음은 가벼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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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이소현

201503081806
호수만을 찍었다. 낙엽이 떨어져 있고 저 멀리 바람에 날리는 갈대가 드리워져 있다. 다시한번 말하자면 호수만이 찍혀있다. 하늘도, 곁가지 땅도 없다. 새벽인지 초저녁인지 알 수 없는 어느 시간에 찍힌 이 호수는 마음 속 깊은 호수의 원형을 담고 있다. 그래서 관람자의 기분과 상관 없이 호수, 기쁘고, 슬프고 우울하지만 아름다운 그 원형의 호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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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1733
첫 눈이 내린 자리에는 발자국으로 마냥 흔적을 내고 싶다. 아직 아무도 발자국을 내지 않은, 설레임이 가득하다. 그런데 눈 속의 나뭇가지가 눈이 내리기 아주 오래전부터 흔적을 담고 삐죽 자라났다. 설레임만 담고 바라봐야 하는 그런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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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1844
아마도 뜨거운 여름의 호수이다. 그리고 역시 호수만을 찍었다. 자연의 마블링으로 호수의 언어를 듣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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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홍성의 엠비언스가 멜로디를 이루며 일렉트로닉한 사운드가 가사를 읊는다.
뚜렷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엠비언스가 화이트 노이즈처럼 들리기도 하고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는 줄곧 너무 저음이어서 스피커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것들은 합체와 분리를 지속하며 비정의 소리를 창조한다. 자연과 나, 세상과 자아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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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손경화

멀게지는 시간

큰 맘 먹고 산 의자에 두 다리를 모두 올리고 앉았다. 이번 여름에 산 기계식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3-4년 전에 중고가게에서 산 탁상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늦은 밤 매미와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 선풍기 바람에 날린 커텐이 베란다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이사 온 지 2년이 넘었는데 베란다 창문을 한 번도 닦지 않았다.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하다. 그러고보니 현관 바닥을 한 번도 쓸지 않았네. 그러고보니 베란다 바닥도 마찬가지 신세다. 그러고보니, 라고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내버려두었다.

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제법 된다. 그냥 멍청히 앉아 있는다. 올해는 그래도 되는 해로 정했다. 내가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셀프 안식년. 하지만 안식을 해야 할만큼 한 게 없어서 그냥 시간 부자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가난한 시간 부자.

뭘 할거야? 쉰다고 하니 친구들이 제일 많이 묻는 말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거야. 나름의 계획을 들려주었고, 실제로도 계획한 대로 거의 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의 제일 중요한 계획은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냥 쉰다고만 했다. 비정이 찍은 사진을 며칠동안 물끄러미 보다가, 올해의 절반이 넘은 지금에야 내 계획을, 이미 하고 있는 이 행위를 말해 줄 적절한 표현이 떠올랐다. 멀게지는 것.

뭘하고 싶어?
멀게지고 싶어.
멀게지는 게 뭐야? 어떻게 해야 멀게 질 수 있어?
글쎄.

작년과 재작년엔 혼자 많이 울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펑펑 울어주었다. 울고 나면 개운해질 줄 알았는데, 처참함 뿐이었다. 울기 싫어서 웃어 보려고 시도한 일은 상태를 더 악화시켰다. 그런데 올해 시간부자가 되어 울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 놓았더니, 나는 울지 않았다. 언제 울었는 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멍석이 깔리면 정신이 드나 보다.

멍석 위에서 우는 대신 겹겹이 쌓인 것들을 퍼내기 시작했다. 바가지를 하나 구해와서 한 바가지, 두 바가지, 세 바가지…수십 번 퍼냈다. 쌓여있는 것들 속에는 한 때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얻기 위해 긴 시간을 들였던 것, 너무 소중해서 아껴두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멀게지기 위해선 헤엄쳐 들어가 모조리 퍼내야 했다. 한 번은 바가지로는 퍼낼 수 없는 견고한 아파트를 만난 적도 있었다. 아파트가 부식되어 무너질 때까지, 그래서 바가지에 담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펑펑 써가며 한참 기다렸다가, 마침내 아파트 여러 채를 다 퍼냈다. 아파트까지 퍼내고 나니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쌓인 잔해를 또 열심히 퍼내고 나니 여름이 왔다. 어느 정도 휑해졌다. 조금 멀게졌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쌓인 것들을 다 퍼내고 내려간 바닥엔 부끄러움 하나가 콕 박혀 있었다. 이것을 감추려고 아파트를 세웠구나. 이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모조리 끌고 왔구나. 겨우.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름은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 콕 박힌 것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지금까지도 그저 보고만 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쏙 빠질 것 같은데, 못하겠다. 손도 대지 못하겠다. 누굴 불러올 수도 없다. 아직 나 자신이 용서되지 않는다.

바가지를 내던지고, 콕 박힌 것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펑펑.
바람이 불어주기를, 기계식 선풍기가 만드는 바람이라도 좋으니 그저 바람이 불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20160822, 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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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 배지현

사진 3장…
장곡 저수지를 산책하면서 만난 자연을 찍은 사진에 대해 나 자신이 어떤 형태를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었는지는, 보내준 사진을 보고 그 간극에 당황스러워 하며 알 수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만난 자연을 찍은 사진이라면, 아름답다고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 있는 찰라의 빛나는 순간의 한 정경. 그런 주목받는 풍경의 빛나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잘못 찍혔다고 지웠을 것 같은 사진을 보며 당황했습니다. 그 간극의 충격으로 멍해져 있다가 한번도 이런 것에는 눈길을 제대로 준 적도 없고 그 존재를 인지하더라도 곧 의식이 자동으로 스캔해 버리며 기대하고 익숙한 아름다움만을 주목했던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장 한 장을 봅니다.
포스터로 사용되었던 보랏빛과 푸른 빛이 어루려져 만든 추상화 같은 사진. 그것이 물의 녹조라는 인식이 그 작품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악취가 나고 없애야할 문제라고 인식해서 그 자체가 우리와 같은 자연의 일부임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판단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찬찬히 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식의 편집이 늘 일어나고 내가 그렇게 자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보면서 이 사진의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일까? 이것은 무엇을 찍은 것이지? 숨은 그림 찾기처럼 궁금증으로 꽉 찼던 사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릴 때 본 시멘트 담벼락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눈 밭에 그림자 어린 것을 보는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사진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던 사진. 그렇지만 거친 질감에 하얀 색과 그림자의 회색의 깊어짐이 좋고 그 희미한 빛과 그림자 같은 것에 호기심이 생기는 사진.

음악에 대해서는 어떤 멜로디도 없으니 난해할 것이라고 각오하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 소리인가? 곤충의 날개짓 소리인가? 들으면서 이런 소리들이 드럼처럼 나팔처럼 어우려저 곡을 연주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에서 그 리듬을 그 음들을 들고 우리를 안내해 준 해설자를 생각하면서 청개구리 소리는? 새소리는? 고라니 우는소리는? 물 흐르는 소리는? 어떻게 해설해 줄까, 내가 들으면서도 인지하지 하지 못한 소리들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가 생깁니다. 장중하면서도 영화에 곧 어떤 일이 생길 것을 두근두근 예고하는 그런 음악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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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6. 현영석

 

얼렁뚱땅 리뷰 대모험

1.

집에 들어오니 소포가 도착해있다. 커터칼을 올려 조심히 봉투를 열었다. 음악과 사진이 들어있다.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의자에 걸친 허리가 맥없이 바닥을 향해 늘어졌다. 피곤과 허기에 기운이 달린 탓이다. 자고 일어나 확인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러기엔 인내심이 부족했다.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노트북에 헤드폰을 연결했다. 6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제목을 확인했다.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불쑥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하루의 끝이었다.

2.

내가 느낀 위로의 감정이 음악과 사진에서 온 게 맞을까. 제목과 상황에 이끌린 감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3.

리뷰를 쓰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음악과 사진에 큰 조예가 없어 작품을 통해 느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몇 년 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광고의 대사가 떠올랐다.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컴퓨터 앞에 앉은 내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4.

시간을 두고 더 보고 듣기로 했다. 그러고나면 더 많은 말이 생길 것 같았다.

5.

보름이 지났다. 2주간 틈틈이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을 감상했다. 집에서도 듣고, 카페에서도 듣고, 산책을 하면서도 듣고, 버스에서도 듣고, 지하철에서도 듣고, 목포를 향해 달리는 KTX에서도 듣고, 서울로 돌아오는 무궁화호에서도 듣고, 섬으로 항해하는 여객선 ‘대흥 페리 8호’ 에서도 듣고,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달리며 듣고, 바다 앞에 앉아 잔뜩 폼을 잡으며 듣고, 산을 오르며 듣고, 편의점에서 김밥을 데우며 듣고,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며 듣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들었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 구겨지니까 집에서만 봤다.)

6.

리뷰를 쓰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키보드 위에 얹은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또 몇 년 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광고의 대사가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7.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업로드하는 유튜버(영상 제목에는 보통 ‘REACTION!!!’이라는 표현이 붙는다)처럼 작품을 감상하는 내 얼굴을 찍어 보내는 건 어떨까. 시도하진 않는 걸로.

8.

영업을 마친 한산한 맥주집.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유혹하는 리뷰쓰기’ 였다, 는 거짓말이고, 남는 건 웃음 뿐인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았다. “형 요즘 너무 외롭다” 라는 D의 말에 누가 더 바보 같은지 겨루던 이들이 불현듯 고독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J는 누군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래.” 몇 시에 일어났냐는 물음에도 똑같이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래’ 라고 대답할 기세였다. 이야기의 주제를 고독으로 이끈 D는 대화를 방해하는 듯한 J의 태도가 거슬린 모양이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야!” 유부남 D가 언성을 높였다.

9.

혼자라서 쓸쓸한 시간을 생각했다. 함께 마음을 나눌 사람이 생겨 외롭지 않은 시간을 생각했다. 끝없이 지속될 것 같은 충만한 시간을 생각했다. 마음이 사그라지는 시간을 생각했다. 작은 관계마저 버겁게 느껴지는 시간을 생각했다. 불안과 혼란. (강한 노이즈.) 스스로 찾은 고독에 안정을 느끼는 순간을 생각했다.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다시 반복) 혼자라서 쓸쓸한 시간을 생각했다. (무한반복 like 뫼비우스의 띠.)

10.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음악을 들으며 뫼비우스의 띠를 그려본다. 시작과 끝이 같은 소리를 쭉 이어붙여 무한히 흐르게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마도 끝없이 마주해야할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11.

더 나은 지금을 원하기에 정답 없는 질문을 반복하는 유부남 D.

12.

유부남 D로 인해 산으로 향하는 리뷰.

13.

이건 리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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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나루

 

바다 건너 멀리서 사진이 왔습니다.

사진 석 장을 하루 이틀 사흘 들여다봤지만 모르겠습니다.

사진만 모르는 게 아니라 실은 세상도 사람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과 함께 소리도 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들어봐도 모르겠습니다.

소리도 사진만큼 어렵습니다.

쓰겠다고 했으니 뭔가 써야 합니다.

생각 나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이렇게 써놓고 보내려니 좀 미안합니다.

전시회에서 흐뭇한 일 반가운 분들만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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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물을 품고 숲 속에 엎드린 웅덩이로 갑니다.

비가 채웠다가 볕이 빨아들였다가 바람이 가만히 쓸어줍니다.

봄이 왔었나 싶게 물러가고 소나기 쏟아진 저녁입니다.

해를 밀어낸 구름에 봉숭아물이  설핏 든 여름이다가 빛 바랜 잎들만 돌아눕는 가을입니다.

곧 눈이 온다고 휘파람 부는 억새밭에 서리가 앉기 시작한 겨울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로 가는 길은 좁습니다.

창포잎이 차례로 눕고 갯버들 잔가지가 어깨를 잡아채면 거미줄이 귀를 핥는 진흙입니다.

이제 가셨나 하면 툭 툭 빗방울이 새로 듣고 언제 개나 올려다보면 말간 하늘이 고개를 내밉니다.

숨이 턱에 차고 손도 발도 후드득거린다 싶을 때 거기 웅덩이가 있습니다.

한 손을 물에 담급니다.

달아오른 이마를 훔칩니다.

한숨 돌렸다 물수제비뜨기를 하며 당신을 기다립니다.

숨쉬는 것 모두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느라 눈길 한번 주지 않습니다.

바람은 이끼가 걸러주고 새소리는 풀숲이 걸러주고

언제 치솟을 지 몰라 내리 누르던 속엣말들은 바람과 새가 가져갑니다.

당신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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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박제욱

친구 녀석이 들고 온 그 비디오 테이프를 데크에 넣을 때만 해도, 내 마음에 그런 폭풍이 휘몰아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Mike Leigh 의 Naked 를 처음 보았을 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 안에서 한참을 쿵쿵 뛰던 그 심장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새벽 세시를 향해 달려가고 이 곳도 이미 자정이 훌쩍 넘어버린 이 시각.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을 듣고 보면서 내 자아는 다시 Naked 의 맨체스터의 어느 밤거리를 헤맨다.
영화에서, 자고 있는 녀석 조니를 깨운 경비원 브라이언은 조니에게 자신의 일터 투어를 시켜준다.
멈추지 않는 조니의 입. 그를 바라보는 브라이언.
회사 부도를 내고 도망다니시던 시절의 우리 아버지는 몇 개월인가를 FILA 본사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셨더랬다. 그 이후로, 여기 태국에서도 FILA 만 고집하신다.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다쟁이 조니 같은 아들이 외로운 경비원 출신 아버지를 방콕 변두리에서 모시고 사는 일이란 생각과는 달리 참. 외로운 일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 최고로 비참하게 외로웠던 시절에, 나의 그 비루한 외로움을 세련되게 달래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결을 참 ‘세련’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나에게 세련된 사진과 음악을 바다건너로 보내주고는 단상을 적어달란다.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바다 건너 이 곳에 도망쳐 와 사는 나를 그들은 아직도 세련되게 위로해 주고 있는 것이다.
We are all stranger
You are alone
Jack 의 단상 201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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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안선경

 

비정의 사진과 음악은 모두 우주적이다.

육체라는 물질에 갇힌 정신에 해방의 기운을 준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물질로 가득 채워진 도시의 공간으로부터 수만년 쯤 떨어져 나와

광활한 원시의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점점 퇴화되는 인간의 자기장이 다시 살아나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그의 말처럼 홀로 있다는 것이 슬픔이나 외로움같은 감상에 갇히지 않고

그 자체로 충만하고 온전한 모습임이 느껴진다.

음악을 듣는 것이라기 보다 존재를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주로 홍성의 저수지를 담은 비정의 사진 속 풍경은

자연이 품은 무한하고 입체적인 속성을 찾아내고 있다.

인간에게 육체를 뛰어넘는 정신이 있다면 자연에도 풍경을 뛰어넘는 신비가 있다.

그 사진 속 자연은 땅과 하늘이, 물과 공기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진다.

비정의 사진을 걸어 놓고 바라보노라면

하늘에 앉아 땅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눈내린 저수지에 드리운 빛이 너무도 따스해

내방에 빛이 내린 착각이 든다.

고요한 홍성의 자연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자만이 포착할 수 있는 예술적 기운을

도시 내방에 갖고 올 수 있게 해준 비정과 이기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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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 성호준

저는 순리네 가족으로부터 사진 석 장과 작은 음악 한 곡을 받았습니다.
제가 읽은 것은 세상의 표면에 있는 질감에 예민해지자, 하는 뜻의 짧은 서사입니다. 왜냐하면 형태가 불분명한 사진과 음악이 질감에 의존하여 무언가를 말하려 한 듯 보였기 때문이죠. 진행 역시 그러합니다. 음악은,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하다가, 아주 적은 수의 음과 지직대는 소음을 점점 증폭시켜 일정한 패턴이 두드러지게끔 이어가기에, 인식되지 않던 것을 점점 인식케 하는, 조금씩 명확하게 하는, 드러내보이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난 숨구멍들, 눈발의 촉감, 나무잔가지들, 물 위에 뜬 작은 식물, 물 안의 돌이 지닌 무늬, 그리고 마침내 갈대밭과 그것에 이어진 물가, 물가에 앉은 나뭇잎들. 이 모든 것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대시킨 것으로, 감각에 대한 각성, 곧 질감에 더 예민해지기를 촉구하는 뜻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그 말을 확장시키자면, 우리네 주변을 보다 온 몸으로 느끼기를 바라는 소망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또한 이 모든 것은 잔향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 남은, 혹은 품은, 모습들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이 지닌 삶의 층을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진과 음악은 말이 없고, 저는 그것에 말을 붙여보았는데… 이기 비정님의 전시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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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강유가람

넌 혼자야.

이런 말을 듣는 건 괴롭다.

나 같이 귀가 얇고, 나약한 인간에게 이런 말은

몰아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가끔 혼자있을 때 오롯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른 이들과 힘께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안온함은

어떻게 보면 광기, 편견, 독선, 혹은 무지일 때도 많다.

그렇지만 같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안온함이 좋다.

동시에 그 편안한 순간이 종종 비겁하다고 느낀다.

비겁해서 다행인 순간들도 종종 발생한다.

그 다행은 나를 자괴감의 세계로 빠져들게하지만

동시에 안온해서 움직이지 못하게도 한다.

그렇게 무한반복이다.

그래서인지 넌 혼자,라고 말하는 사진과 음악을

대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마주한다.

그동안의 잡념을 떨치고 머리속의 여백을 바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더러운 물의 시간. 더러운 물과 접속한다.

더럽다. 동일시의 감정이 일어난다.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런데 느껴진다.

큰일이다.

글을 쓰면서 잡념으로 다시 빠져든다.

일상적인 걱정과, 두려움이 나를 지배한지 오래되었다.

조금의 멍도 때리지 못하는 게 나다.

이 사진들에 대한 글을 쓰면 두려움과 걱정을 토로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역시 쉽지가 않다. 글다운 글을 쓴지 너무 오래되었다.

기획서와 홍보문이 아닌 방식으로 나라는 사람을 풀어낸 게

언제였을까.

풀어낼 공간이 없다는 핑계.

결국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안온함에서 벗어나기란 이렇게 어렵다.

나 자신을 직시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그 길을 가고 있는 두 작가에게 작은 원망을 보낸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지만

아직 그릇이 모자라서 더이상 적지 못하겠노라는

변명을 덧붙이며.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오래 갑시다.

가끔 서로 변명도 하면서.

가끔은 괜찮잖아요. 그쵸? 🙂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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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김수정. 장세경

균열을 감지하며 질문하는 시간들

-장세경

이제 혼자 노는 건 물이 올랐고,
6분간 영화 주인공 놀이를 했다.
오, 6분전엔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나?!

– 감수정